
해마다 돌아오는 12월.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도심의 표정은 늘 같지 않았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겨울이 오면 색다른 얼굴을 꺼내놓곤 했죠. 특히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펼쳐지는 풍경들은 시대를 따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변해왔습니다. 이 글은 그 시간의 결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그 시절, 어쩐지 더 따뜻했던 거리
30년쯤 전의 서울. 겨울이면 하얀 입김이 나오는 거리마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설렘이 잔잔히 퍼졌습니다. 어릴 적 기억으로 남은 종로의 불빛은 지금도 아련합니다. 당시에는 대단한 장식이 없어도 괜찮았습니다. 백화점 창가에 붙은 눈송이 스티커, 매장에서 흘러나오던 ‘징글벨’,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 시절 명동은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거리 중 하나였죠. 지금처럼 SNS를 생각하며 움직이는 시대는 아니었으니까요. 윈도우 쇼핑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았고, 쇼윈도 속 진열된 인형 하나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거리엔 종종 산타 모자를 쓴 사람들이 지나갔고, 때론 교회 청년부에서 나와 캐롤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민원부터 들어왔을 장면들이, 그땐 그 자체로 풍경이었죠. 가족끼리 케이크 하나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머니는 장갑을 끼고 아버지의 팔짱을 꼈습니다. 누군가는 그 시절을 ‘불편했지만 편안했다’고 표현하더군요. 이제는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시간입니다.
번쩍이는 도시, 변해버린 감성
2000년대 들어서며 서울은 눈에 띄게 바빠졌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면 어디선가 항상 ‘크리스마스 대축제’ 같은 말이 들렸죠. 대형 쇼핑몰, 백화점, 호텔마다 경쟁이라도 하듯 조명과 이벤트를 쏟아냈습니다. 청계천은 그 중심에 있었고요. 예전엔 거리 전체가 따뜻한 기분이었는데, 이즈음부터는 특정 장소에서만 ‘빛’이 쏠렸습니다. 포토존이 등장했고, 연말이면 어디서 사진 찍었냐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조명은 더 밝아졌고, 소비는 더 화려해졌습니다. 호텔 뷔페 예약 경쟁이 있었고, SNS에 올릴 데이트 코스도 중요해졌죠. 단순한 데이트 대신 '연말 콘텐츠 소비'가 필요해진 겁니다. 물론 이런 변화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도시가 성장한다는 건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그 중심에서 뭔가 놓친 듯한 기분이 들었던 건 왜일까요? 조금은 복잡해진 그 시절의 연말. 마음보다 눈이 더 바빠졌던 시기였습니다.
취향을 담은 연말, 그리고 조용한 설렘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또다시 서울의 겨울은 다른 색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경험은 크리스마스마저 바꾸어 놓았죠.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자, 거리보다 ‘집 안’의 분위기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소형 트리, 홈파티, 배달 케이크, 그리고 셀프로 만든 캐롤 플레이리스트까지.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연말 감성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겁니다.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예전처럼 무작정 걷는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목적은 분명했고, 사진 한 장을 위한 움직임이기도 했죠. 청계천이나 DDP 같은 장소는 여전히 조명이 화려하지만, 그것마저도 ‘인생샷’을 위한 배경일 뿐이라는 느낌이 강해졌습니다. MZ세대는 감성도 다릅니다. 함께보다는 ‘나답게’를 중요시하고, 평범한 공간도 특별하게 만들어냅니다. 같은 거리라도 누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되니까요. 지금의 서울은 정해진 공식 없이 연말을 즐기는 시대에 와 있습니다. 레트로 감성을 찾아 과거를 흉내 내는 이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홀로 파티를 여는 이도 있습니다. 모두의 크리스마스가 조금씩 다르게 빛나는 중입니다.
서울의 크리스마스는 단순한 축제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이 연말의 풍경 속에서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성장하고, 사람들의 감성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 냄새 나던 거리에서 반짝이는 빛의 도시로, 그리고 다시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지는 지금. 서울의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풍경, 그 속에서 다시 누군가는 추억을 만들겠죠. 당신의 올해 크리스마스는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