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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세대가 기억하는 서울 크리스마스

by sinonova 2025. 11. 21.

서울 크리스마스 사진

요즘 아이들한테 “예전 크리스마스는 어땠는지 알아?”라고 물으면

아마 “그땐 트리도 있었어요?” 정도의 반응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근데 우리한텐 그게 단순한 '겨울 행사'가 아니었단 말이지.

명동 거리. 연말만 되면 꼭 한번쯤은 가봐야 하는 곳이었고,

무조건 사람이 바글바글했지.

 

거리의 풍경

그 많은 인파 속에서 서로 손잡고 걷던 그 순간이,

지금 생각하면 대단할 것도 없는데 그게 그렇게 설레던 거야.

종로. 종각역. 거기 작은 통닭집에서 포장해서 집에 들고 가던 그 길도 기억난다.

하얀 종이봉투에 치킨 기름 스며들던 그 느낌.

그 냄새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온 가족을 들뜨게 만들었어.

아니, 지금은 이게 무슨 큰일도 아니지만

그땐 그 치킨 한 마리가 우리에겐 잔치였거든.

 

집에 도착하면, 거실엔 하얀 크림 케이크가 한쪽에 놓여 있고 엄마는

식탁 위에 초를 꽂기 시작하시고.

그 짧은 순간, 온 가족이 하나로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했어. 진짜.

요즘처럼 SNS에 사진 올리고 그런 거 없었지만,

사진이 없어도 그 장면들 하나하나 다 기억나. 엄마가 웃으면서 “초는 누가 끄니~?”

하시면 동생이 먼저 나서서 끄고,

아빠는 “이건 내가 사온 거야”라고 자랑처럼 말씀하시고.

그게 우리 집 크리스마스였지.

그리고 꼭 TV에선 ‘나 홀로 집에’가 나왔지.

뻔한 줄거리 알면서도, 모두가 거실에 앉아 다시 본다고. 이불 속에 발 집어넣고 따뜻하게 앉아서 같이 웃고, 같이 감탄하고, 그리고 나중엔 또 같이 잠들고.

추억

그땐 진짜로, 그냥 있는 것만으로 좋았던 시절이야.

뭘 더 하지 않아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제일 큰 선물이었으니까.

학교에서도 크리스마스는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였어.

그 당시엔 다들 정성스럽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지.

색종이 접어서, 스티커 붙이고, 펜으로 삐뚤빼뚤하게 글씨 쓰고.

“항상 고마웠어.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 별거 아닌 말인데도 그걸 직접 받으면 마음이 찡했거든.

진심이라는 게 글씨에서도 느껴졌으니까.

그게 다야. 그게 전부인데도,

 

그 시절 크리스마스는 뭔가 더 풍성했어. 지금처럼 비싼 조명이나 이벤트 없어도.

요즘 거리도 예쁘고 조명도 멋져.

사진도 잘 나오고. 근데 뭔가,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가워. 아무리 따뜻한 조명이 있어도,

그 시절의 온기는 따라가지 못해.

 

왜일까. 우리가 변한 걸까? 세상이 그런 걸까?

아니면, 그 시절에 있었던 그 사람들이 곁에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몰라.

지금도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아이들은 선물을 기다리고, 거

리는 여전히 반짝이지만 내 안 어딘가엔 여전히 그 시절의 크리스마스가 남아 있어.

그렇게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그냥 케이크 하나, 치킨 한 마리, 그

리고 웃고 떠드는 가족만 있어도 충분했던 그 시절.

올해는 그냥, 라디오에서 캐롤 한 곡 들으면서 그 시절처럼 조용히 보내고 싶다.

누가 뭐라 해도, 그게 나한텐 진짜 크리스마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