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아이들한테 “예전 크리스마스는 어땠는지 알아?”라고 물으면
아마 “그땐 트리도 있었어요?” 정도의 반응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근데 우리한텐 그게 단순한 '겨울 행사'가 아니었단 말이지.
명동 거리. 연말만 되면 꼭 한번쯤은 가봐야 하는 곳이었고,
무조건 사람이 바글바글했지.
거리의 풍경
그 많은 인파 속에서 서로 손잡고 걷던 그 순간이,
지금 생각하면 대단할 것도 없는데 그게 그렇게 설레던 거야.
종로. 종각역. 거기 작은 통닭집에서 포장해서 집에 들고 가던 그 길도 기억난다.
하얀 종이봉투에 치킨 기름 스며들던 그 느낌.
그 냄새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온 가족을 들뜨게 만들었어.
아니, 지금은 이게 무슨 큰일도 아니지만
그땐 그 치킨 한 마리가 우리에겐 잔치였거든.
집에 도착하면, 거실엔 하얀 크림 케이크가 한쪽에 놓여 있고 엄마는
식탁 위에 초를 꽂기 시작하시고.
그 짧은 순간, 온 가족이 하나로 모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했어. 진짜.
요즘처럼 SNS에 사진 올리고 그런 거 없었지만,
사진이 없어도 그 장면들 하나하나 다 기억나. 엄마가 웃으면서 “초는 누가 끄니~?”
하시면 동생이 먼저 나서서 끄고,
아빠는 “이건 내가 사온 거야”라고 자랑처럼 말씀하시고.
그게 우리 집 크리스마스였지.
그리고 꼭 TV에선 ‘나 홀로 집에’가 나왔지.
뻔한 줄거리 알면서도, 모두가 거실에 앉아 다시 본다고. 이불 속에 발 집어넣고 따뜻하게 앉아서 같이 웃고, 같이 감탄하고, 그리고 나중엔 또 같이 잠들고.
추억
그땐 진짜로, 그냥 있는 것만으로 좋았던 시절이야.
뭘 더 하지 않아도.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제일 큰 선물이었으니까.
학교에서도 크리스마스는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였어.
그 당시엔 다들 정성스럽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지.
색종이 접어서, 스티커 붙이고, 펜으로 삐뚤빼뚤하게 글씨 쓰고.
“항상 고마웠어.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 별거 아닌 말인데도 그걸 직접 받으면 마음이 찡했거든.
진심이라는 게 글씨에서도 느껴졌으니까.
그게 다야. 그게 전부인데도,
그 시절 크리스마스는 뭔가 더 풍성했어. 지금처럼 비싼 조명이나 이벤트 없어도.
요즘 거리도 예쁘고 조명도 멋져.
사진도 잘 나오고. 근데 뭔가,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가워. 아무리 따뜻한 조명이 있어도,
그 시절의 온기는 따라가지 못해.
왜일까. 우리가 변한 걸까? 세상이 그런 걸까?
아니면, 그 시절에 있었던 그 사람들이 곁에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몰라.
지금도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아이들은 선물을 기다리고, 거
리는 여전히 반짝이지만 내 안 어딘가엔 여전히 그 시절의 크리스마스가 남아 있어.
그렇게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그냥 케이크 하나, 치킨 한 마리, 그
리고 웃고 떠드는 가족만 있어도 충분했던 그 시절.
올해는 그냥, 라디오에서 캐롤 한 곡 들으면서 그 시절처럼 조용히 보내고 싶다.
누가 뭐라 해도, 그게 나한텐 진짜 크리스마스니까.